심리학 사용법 -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
흥정에서 절대 손해 보지 않는 협상의 기술
오늘 아침, 도심 한복판에 있던 회사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근교로 이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출근 시간은 물론 교통비에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급상승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당신은 직원들의 원활한 출퇴근을 위해 당연히 회사가 교통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짠돌이로 유명한 사장이 과연 쉽게 허락할까? 어떻게 말해야 그가 교통비 지원을 수용할까? 첫째, 먼저 사장에게 회사 차량으로 포르쉐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한다. 사장이 무슨 터무니없는 요구냐고 화를 내면 그때 교통비 지원을 요청한다. 둘째, 회사 차량으로 포르쉐를 제공하거나 교통비를 지원해 달라고 말하고 선택은 사장에게 맡긴다. 셋째, 이리저리 돌려 가며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적절한 시점에 교통비 지원을 거론한다.
“고객에게 ‘노’라고 말할 기회를 주지 마라.” 판매왕 핸드북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대화 중에 가능한 많은 “예스”를 상대로부터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라는 말을 꼭 협상 실패의 증거인 것처럼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는 심리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년원 원생들과 함께 동물원으로 소풍을 가 줄 수 있는지’ 묻는 설문 조사를 했다. 학생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질문했는데, A그룹에게는 “우리는 규칙적으로 원생들을 돌봐 줄 자원봉사자를 찾고 있어. 매주 두 시간씩 최소 2년 동안 봉사해야 해. 도와줄 수 있니?”라고 물었다. 무리한 부탁을 받은 참가자들 중 지원자는 한 명도 없었다. 거부 의사를 확인한 뒤 질문자가 말했다. “다른 자원봉사도 가능해. 딱 한 번 동물원으로 두 시간 동안 소풍을 가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니?” B그룹에게는 이렇게 질문했다. “우리는 원생들과 함께 두 시간 동안 동물원에 소풍을 갈 거야. 혹시 도와줄 사람?” 마지막 C그룹에게는 매주 두 시간씩 총 2년간 자원봉사를 하는 방법과 단 한 번 두 시간 소풍을 가는 자원봉사가 모두 가능하다고 말한 뒤 각자 선택하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A그룹 학생들은 무려 50퍼센트나 자원봉사를 수락했지만 B그룹 학생들은 17퍼센트, C그룹 학생들은 25퍼센트만이 수락했다. 무리하고 뻔뻔한 부탁을 해서 일단 “노”라는 대답을 들은 다음 적절한 부탁을 해서 “예스”를 끌어낸 비율이, 처음부터 적당한 부탁으로 “예스”를 끌어낸 비율보다 무려 3배나 높았다. 이처럼 거절할 가능성이 큰 극단적인 제안을 한 다음 보다 합리적인 제안을 해서 “예스”를 끌어내는 것을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이라고 한다. 면전에서 문을 닫아 문전박대하는 것처럼 암담한 심정을 맛보게 하고는 원래 의도했던 문을 살그머니 열어 준다는 의미다.
이 기법이 통하는 이유는 ‘상호성’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주고받음이 균형을 이루도록 신경을 쓴다. 만약 균형이 깨지면 불편하고 화가 난다. 때로 사람들은 균형을 되찾고 싶은 나머지 과도한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 한 심리 실험에서는 실험 감독이 먼저 참가자에게 청량음료를 선물하고는 나중에 좋은 목적으로 발행된 것이니 복권을 사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청량음료를 선물받은 참가자는 그렇지 못했던 쪽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복권을 샀다. 청량음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싼 복권을!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은 가격을 흥정하거나 물건 구매를 유도할 때 장사꾼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다. 경품 행사 역시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의 한 예다. 간혹 어디선가 이벤트에 당첨되었으니 상점으로 찾아와 경품을 가져가라는 연락이 오기도 하는데, 이때 경품을 받기로 하면 자연스럽게 상인에게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갖게 된다. 이때 상인은 경품보다 비싼 물건을 당신 손에 쥐어 줄지도 모른다. 바이어나 납품업자들도 이 전략을 잘 알고 있어서 견적서를 제시할 때 터무니없이 높은 액수를 제시한 뒤, 거절당하면 그제야 원하는 가격을 제안해 계약을 따내기도 한다.
사장이 교통비 지원을 수용하게 만들고 싶다면, 상대방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큰 요구 사항, 즉 ‘포르쉐를 지원해 줄 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게 낫다. 사장이 나를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보면 어떡하느냐고? 창피한 건 잠깐이지만 협상의 결과는 두고두고 삶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은 놀랄 만큼 효과가 있다. 그런데도 실질적 이득보다 체면을 택할 텐가? 자녀가 최소한 자기 방은 청소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집 안 대청소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라. 기획서 작성을 제시간까지 마치지 못할 것 같다면 상사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연기 시한을 먼저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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